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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갓 볶은 커피가 오히려 맛이 없을 수 있는 이유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로스팅 날짜’를 중요하게 생각할 거예요. 신선한 원두일수록 맛있다는 이야기를 익숙하게 들어왔고, 실제로도 그렇게 알고 있죠. 그런데 놀랍게도, 로스팅한 직후의 원두는 오히려 제 맛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는 ‘신선할수록 맛이 없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예요. 이 모순 같은 현상의 핵심에는 바로 ‘디게싱(Degassing)’이라는 과정이 있습니다. 디게싱은 말 그대로, 로스팅 직후 원두 내부에 갇힌 가스를 빼내는 시간을 말해요. 커피 원두는 로스팅을 하는 순간 수많은 화학반응이 일어나며, 그 결과 이산화탄소(CO₂)와 기타 휘발성 가스가 원두 속에 다량으로 생성됩니다. 문제는 이 가스들이 아직 배출되지 않은 상태에서 커피를 추출하면, 물과 접촉하는 순간 빠르게 방출되면서 추출 흐름을 방해하고, 크레마를 뻥튀기처럼 부풀려 실제 맛을 왜곡시킨다는 거예요. 특히 에스프레소처럼 압력으로 추출하는 방식에서는 디게싱이 충분하지 않으면 크레마가 과도하게 생기고, 이 아래 맛은 탁하거나 날카롭게 느껴질 수 있어요. 드립 커피도 마찬가지예요. 가스가 남아 있을 경우 뜸 들이기 단계에서 물이 제대로 스며들지 않고 부풀기만 하면서, 추출이 불균형하게 이루어지죠. 많은 초보자들이 “왜 원두는 좋은 걸 샀는데, 맛이 텁텁하지?”라고 느끼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디게싱 부족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문 로스터리에서는 보통 로스팅 후 2~3일 이상 지난 원두를 판매하거나, 로스팅 날짜와 함께 ‘적정 추출일’을 따로 안내하는 경우도 많아요. 결론적으로 커피는 로스팅과 동시에 마시면 안 되고, 반드시 잠시 ‘숨 고르기’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기억해 두면 좋아요.
2. 디게싱은 왜 필요한가? 이산화탄소가 커피에 끼치는 실제 영향
커피 로스팅 과정에서는 수백 가지의 화학반응이 동시에 일어나는데, 그중 대표적인 결과물 중 하나가 바로 이산화탄소(CO₂)입니다. 이산화탄소는 로스팅이 끝난 직후 원두 내부에 고농도로 남아 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천천히 외부로 빠져나오게 돼요. 이 과정을 ‘디게싱’이라고 부르며, 원두 내부에서 발생하는 가스를 자연스럽게 배출시키는 중요한 시간이에요. 문제는 이 가스가 향미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크다는 점입니다. 첫째, 이산화탄소가 과도하게 남아 있는 상태에서 커피를 추출하면 물이 원두 속으로 제대로 침투하지 못하고 가스에 밀려 표면에서 튕겨 나가게 돼요. 그 결과, 커피 성분이 고르게 추출되지 않고, 향미의 균형이 무너져버리죠. 둘째, 드립 추출 시 뜸 들이기 과정에서 가스가 과도하게 빠져나오면 물줄기가 흔들리거나 과도한 부풀음이 생기는데, 이때 과소 추출이나 과추출이 동시에 발생해 커피 맛이 텁텁하거나 날카롭게 느껴질 수 있어요. 셋째, 이산화탄소는 휘발성 향미 성분을 밀어내는 역할도 해요. 커피의 복합적인 향은 가볍고 휘발성이 높은 분자들이 만들어내는데, CO₂가 많은 상태에서는 이런 향 성분들이 충분히 올라오지 못하고 뭉개지기 쉬워요. 특히 플로럴, 시트러스 계열의 커피에서 디게싱이 덜 되었을 경우, 원두 본연의 향미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 하나의 실용적인 이유는 압력 관련 문제예요. 이산화탄소는 밀폐 용기 내에서 내부압을 높이기 때문에, 디게싱 없이 바로 포장하거나 장기간 보관하면 가스가 축적돼 팽창하거나 부패로 이어질 위험도 있어요. 결국 디게싱은 커피의 맛뿐 아니라 안정성, 추출 편의성, 향미 보존 모두를 위한 필수 과정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맛있는 커피를 만들기 위해선 단순히 원두를 사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원두가 얼마나 ‘숨을 잘 쉬었는지’를 함께 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3. 디게싱 타이밍별 맛의 차이와, 소비자가 기억해야 할 한 가지
그렇다면 로스팅 후 며칠이 지나야 커피 맛이 가장 좋을까요? 이 질문에 대해 정답은 없지만, 일반적으로 로스팅 후 2일에서 7일 사이를 가장 이상적인 디게싱 기간으로 봅니다. 물론 이는 원두의 로스팅 강도, 품종, 가공 방식에 따라 조금씩 다르죠. 예를 들어 라이트 로스팅은 내부에 남아 있는 가스양이 많기 때문에 디게싱 기간이 더 길고, 다크 로스팅은 빠르게 가스가 빠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짧아요. 플로럴 계열의 향이 강한 원두일수록 가스가 향미를 방해하는 정도가 크기 때문에, 이런 커피는 로스팅 후 최소 3~4일은 기다렸다가 마시는 게 좋습니다. 반면 다크 로스트나 인도네시아 계열처럼 바디감이 중심이 되는 커피는 2일 차부터 추출해도 비교적 큰 차이가 없습니다. 이런 정보는 원두를 처음 받았을 때 확인할 수 있는 ‘로스팅 날짜’와 함께 제공되는 ‘추천 추출일’을 보면 참고할 수 있어요. 실제로 좋은 로스터리에서는 로스팅 날짜 외에도 ‘Best after’ 날짜를 함께 표기해서, 언제부터 마시는 게 가장 좋을지를 안내하죠. 이게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실제 맛의 품질을 고려한 매우 실용적인 정보라는 걸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특히 가정에서 홈카페를 운영하거나, 원두를 대량 구매하는 경우라면 이 디게싱 타이밍을 기준으로 마시는 순서를 정리하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어요. 더 나아가, 만약 로스팅 후 시간이 지나 너무 오래되었다면, 드립보다는 에스프레소나 밀크 베이스 음료로 사용하는 식으로 음용 방식을 조절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커피는 결국 타이밍입니다. 원두를 언제 샀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언제부터 어떻게 마시는지를 아는 게 훨씬 더 큰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로스팅 날짜를 기준으로 2일에서 10일 사이의 기간을 '맛의 황금기'로 설정해 두고, 이 기간 안에서 추출 레시피를 조정해 보는 습관만 있어도 커피의 품질은 분명 달라질 거예요.